[시승기]거리를 배회하는 우주선. 푸조 5008 GT

푸조는 국내에서 상당히 저평가 받는 브랜드 중 하나다. 푸조가 가지고 있는 역사는 결코 짧지도,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그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차량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푸조를 한번 알아보라 했더니 ‘자동차 기자라더니 푸조 같은걸 추천하고 있어..’ 라는 답변을 받은 적도 있으니 말이다.
 
MPV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이전세대와 달리 본격적인 SUV의 길을 가기 시작한 5008이다. 그런 변화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한껏 키운 덩치와 선명해진 라인이 시선을 강탈한다. 잔뜩 성난 라인을 통해 기존의 순둥순둥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다. ‘방글방글 웃는 상’으로 불리던 푸조의 이미지를 작정하고 바꾸고자 한 듯 하다.
 

이러한 변화는 실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급스러운 감성을 살리고 혁신적인 인테리어를 추구한 푸조의 아이-콕핏(i-Cockpit)을 적용한 5008의 실내는 우주선과 같은 구성을 갖추고 있다. 항공기 조정석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콕핏은 직관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만들어내 처음 타는 이들도 거부감 없이 금새 적응 할 수 있게 한다.

운전석에 앉으면 상단부와 하단부가 잘린 Z컷 형태의 컴팩트한 스티어링 휠이 운전자를 반긴다. 차체의 크기 대비 조금은 작아보이는 스티어링 휠이기 때문에 ‘조향이 잘 이루어질까’ 싶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해보면 이러한 걱정은 모두 사라진다. 오히려 컴팩트한 스티어링 휠의 크기로 인해 계기판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빼꼼히 내밀 필요가 없을뿐 더러 덩치에 맞지 않은 민첩한 조향감을 선사한다. 다른 브랜드에선 찾아보기 힘든 푸조만의 특징 중 하나다.
 
7인승인 탓에, 트렁크에는 두 개의 시트가 숨어있다. 3열 시트는 간단한 조작으로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캠핑을 떠나서도 색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3열은 접이식 시트인 탓에 일행을 태우고 장거리를 가기엔 조금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9인승 차량을 4명의 편안함을 위해 구매하듯, 3열 시트의 불편함은 전혀 문제 될 부분은 아니다.

본격적인 시승을 위해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이 모델에 장착된 엔진은 2.0L 디젤 엔진. 변속기는 EAT6 6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린다. 이를 통해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0.82kg.m을 발휘한다. 엑셀을 지긋이 밟으니 매우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한다. 육중한 크기에서 상상하기 힘든 부드러움이다. 간혹 천방지축으로 뛰쳐나가는 SUV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드러움이 반갑게 느껴진다. 고속의 영역에 들어서도 부드러운 주행은 계속된다. ‘GT’라는 이름을 붙일 만 하다. 한 단계 아래에 위치하는 5008 GT 라인의 경우 1.6L 엔진을 품고 있어 고속 및 오르막길에서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종종 있다면 꼭 2.0L 엔진을 탑재한 GT를 경험해보길 권한다.

그립컨트롤 트림이 아닌 탓에, 험난하지 않은 짧은 임도로 진입한다. 랠리에서 한 끗발 날리는 푸조이기 때문에 그립컨트롤이 없어도 잘 다져진 임도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함께 했다.
5008은 기자의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충분하다. 험난한 오프로드가 아니라면 그립 컨트롤이 없어도 빠져나가는데 충분하다. 수많은 SUV들이 ‘도심형’이라는 타이틀을 빌미로 덩치값을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푸조 5008은 다재다능한 편이다. 탄탄한 기초체력에, 듬직한 사자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다.

푸조의 매력은 이러한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듬직함’이다. 현행 모델에 들어 약간의 ‘화려함’을 더하긴 했으나 불필요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믿고 달릴 수 있는 포근함과 부족하지 않은 기본기. 그것이 푸조의 장점이자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푸조를 괜한 이유를 붙여가며 안좋은 브랜드로 밀고 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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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필 에디터 gcarmedia@g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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