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순수 악, 닛산 370Z
- 자동차 시승기
- 2018. 10. 26. 13:00
과학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눈부신 발전은 편리함을 주지만 그 안에서 본질을 잃는 경우가 있다. 순수학문에 대한 열정을 잃고 기술 발전과 제조업에만 집중하는 세태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기술의 발전에서 오는 이득과 여기서 기인하는 편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동감이 살아있는 ‘날 것’의 느낌을 겪어본 이라면, 오랜 고향 친구를 떠올리듯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닛산의 Z시리즈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순수함’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화려한 기술로 점철된 최근의 스포츠카와는 조금 많이 다르다. 지난 2009년 국내에 첫 출시 된 이후 몇번의 페이스리프트는 거쳤으나 크게 변화된 모습은 없다. 기본 뼈대는 오히려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근 10년간 고집스럽게 버텨온 셈이다.
하지만 370Z의 디자인은 결코 10년된 모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우디의 TT가 그간 두번의 풀 체인지를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갖춘 것과 비교해보면 370Z의 디자인이 그 당시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보아도 결코 촌스럽지 않고 개성적인 디자인이다.
살짝 올라간 눈매는 앙칼진 인상을 만드는 포인트다. 좌우로 크게 튀어나온 앞뒤의 펜더는 370Z에 ‘여성형’의 캐릭터를 부여하기 망설이게 만들만큼 근육질이다. 앞모습 뿐만 아니라 뒷모습에서도 성난 등근육을 떠올릴 만큼 강렬한 라인이다. 몇몇 스포츠카에게 ‘유려하고 치명적인 섹시함을 전달하는 라인’이라는 설명을 붙인다면, 닛산 370Z에게는 ‘악마의 얼굴이 보이는 듯한 근육질 라인’이라는 설명이 제격이다
실내로 들어서면 조금은 당황스럽다. 도저히 2018년에 판매하는 5000만원대의 스포츠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스티어링 휠에 달려있는 버튼은 10개가 되지 않는다. 네비게이션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누가 보아도 클래식한, 요새는 찾아보기도 힘들어진 CD 플레이어가 내장된 오디오 시스템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USB를 통해 기자의 아이폰을 연결해봐도 ‘2009년 당시 아이튠즈를 통해 아이폰에 노래를 넣던’ 방식만을 인식한다. 블루투스를 통해 연결해보아도 전화 통화만 가능할 뿐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버튼 시동이 달려있는 것이 용하게 느껴진다
본격적인 주행에 나서며 3.7L V6 엔진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계속되는 다운사이징 열풍 속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이다. 그간 ‘닛산 페어레이디의 변덕스러움’을 꽤 많이 들은 탓에 어느 때 보다도 긴장하며 출발했지만 생각보다 얌전하다.
처음 만나는 차량으로 자칫 방심하면 도로 위에서 여지없이 돌게 된다. 서킷도 아닌 도로에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사고 위험은 물론 난폭운전에 해당해 민폐만 끼치게 된다. 시승을 진행할 때 종종 찾는 공터까지 교과서에 나올 법한 자세로 주행한다.
편도로 약 100km, 별도의 조작 없이 흐름에 따라 조용히 달린 결과는 연비에서 의외의 만족감으로 다가온다. 370Z의 공인 복합연비는 8.8km/L. 연비 측정을 하기에 조금 부족할 수도 있는 거리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연비는 8.1km/L(12.3L/100km)를 표시한다. 혹자는 ‘포르쉐도 그렇게 운전하면 연비 잘 나온다’고 말하곤 하지만 공인연비에 준하는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다.
공터에 도착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엑셀을 걷어찬다. ‘어?’하는 순간 뒤가 돌아간다. 카운터 스티어링을 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지만 반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운전을 잘 하는건 아니지만 이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넓은 공터를 무대 삼아 회전과 가속을 반복한다. 그간의 경험상 ‘이 정도면 완벽하진 않아도 알아가는 듯 하다’ 싶은 시점이 있지만, 370Z는 도저히 그 시점이 다가오지 않는다. 최고출력 333마력, 최대토크 37.0kg.m이라는 제원상 수치는 스포츠카 치고는 결코 파격적인 성능은 아니다. 그러나 그 성능이 오롯이 발휘되는 고회전의 구간으로 넘어가면 여지없이 뒤가 흔들린다.
어느 시점에서 차가 흔들리는지에 대한 감이 잡히고 나니 새로운 사실이 다가온다. 바로 노면을 매우 민감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스포츠카에게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짧은 것은 그리 대단한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노면의 상태를 운전자에게 어떻게 전달하는가는 조금 다른 문제다. 지금껏 차량을 통제하느라 신경쓰지 못했던 정보를 인지하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370Z는 이것을 지나칠 정도로 아주 세세하게 전달한다. 이 모델을 출퇴근용으로 운용한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370Z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누군가는 통제가 힘들다고 하며 누군가는 마지막 남은 순수한스포츠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평가가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370Z는 화려한 최신 기술과 편의장비가 다 갖춰진 모델들이 ‘스포츠카’라며 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시기에도 정통 스포츠카를 표방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함부로 통제할 수 없게 한다. 날뛰고 싶은 본능이 악의로 생겨난 것이 아닌 원래 그런 존재인 셈이다.
그렇다. 닛산 370Z는 온갖 기술이 난무하는 시대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순수한 악이다.
최정필 에디터 gcarmedia@g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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