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왜건의 계보
- 정보 칼럼
- 2018. 1. 6. 11:30
자동차를 구분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카테고리는 차량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나누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달리기 위한 차량은 스포츠카, 4개의 도어로 편안한, 어찌 보면 가장 무난하게 탈 수 있는 세단, 트렁크가 위로 잡아 올리는 문을 닮았다 하여 붙은 해치백, 뛰어난 험로 주파 능력을 바탕으로 스포츠 활동에 적합한 SUV(Sport Utility Vehicle), SUV와 트럭의 장점을 고루 섞은 픽업 트럭 등이 대표적인 구분이다.
최초의 자동차는 오픈카?
ⓒ포드 모델 A
우리나라의 첫 번째 자동차는 고종황제가 사용한 포드 A 모델이다. 국내에 들여온 시기는 1903년으로 알려져 있다. 고종황제가 직접 운전을 했다기 보단 고종황제를 모시기 위해 들여온 모델이다. 모델 A는 딱히 그 형태로 구분하기 힘들지만 굳이 나눈다면 루프가 없는 세단으로 볼 수 있다.
ⓒ시발 자동차
최초로 생산된 자동차는 그 이름도 유명한 ‘시발’자동차다. 생산된 시기는 1955년으로 미군이 6.25 전쟁 이후 버리고 간 지프차량을 모아 해체, 재조립해 만든 차량으로 우리나라의 첫 번째 SUV로도 볼 수 있다.
ⓒ새나라자동차. 자료출처 : 국가기록원
그 이후에 등장한 차량은 1962년 출시된 ‘새나라차’다. 새나라자동차공업에서 출시한 모델로 닛산의 블루버드 P301형을 분해 상태로 수입, 국내에서 재조립 하는 형태로 출시된 세단모델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량이 있었지만 1974년 기아자동차가 마쓰다의 파밀리아에 첫 국내 생산 엔진을 탑재한 브리사를, 현대자동차가 1975년 출시한 ‘포니’가 출시하면서 세계 16번째, 아시아 두 번째 고유 모델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왜건을 향한 꾸준한 도전
ⓒ토요타 퍼블리카 왜건
첫 번째 국산 왜건은 신진자동차의 퍼블리카 왜건이다. 1967년 일본의 토요타 자동차와의 제휴를통해 생산한 모델이다. 1969년엔 현대자동차가 포드 20M의 왜건 출시했다. 자동차라는 것이 지금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자동차’는 사치품을 넘어 그야 말로 ‘부의 상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왜건’과 같은 특이 차종의 수요는 드물었다. 1973년 포드 20M이 단종되며 왜건은 잠시 그 모습을 감췄다.
ⓒ현대 포니 왜건
1974년과 1975년 출시된 기아자동차의 브리사와 현대자동차의 포니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중에서도 포니가 갖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브리사는 소형세단이었지만 포니는 5도어 해치백이었으며 포니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공개한 컨셉트는 2도어 쿠페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운영하는 이탈디자인에 의뢰를 해 탄생한 디자인이었지만 쿠페 모델은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포니는 이듬해 포니 픽업을, 1977년에는 포니 왜건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1982년 포니2를 출시한 현대자동차는 1985년 포니2를 기반으로 한 포니 왜건과 포니 픽업트럭을 출시했다. 포니 왜건 이후론 왜건 모델을 찾아볼 수 없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현대자동차가 스텔라 왜건을 제작하긴 했으나 일반 판매가 아닌 정부 기관 납품으로만 판매됐다.
ⓒ현대 아반떼 투어링
왜건의 부활을 알린 모델은 현대자동차의 아반떼다. 1995년 서울 모터쇼에서 컨셉트카로 선보였던 해외 시장용 모델을 국내에 출시한 것이다. 당시 출시 명은 ‘아반떼 투어링’으로, 출시 초기엔 적잖은 인기를 누렸지만 그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이듬해엔 기아자동차가 왜건을 출시했다. 프라이드를 기반으로 생산한 프라이드 왜건이 그것이다. 프라이드가 출시 된 지 10년이나 지난 후에 나온 모델이었기에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으나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공간으로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기아자동차는 이후 중형 모델인 콩코드의 왜건 개발을 시작했지만 개발이 마무리 될 즈음 콩코드의 후속모델인 크레도스가 출시됨에 따라 ‘크레도스 왜건’으로 출시됐다.
ⓒ크레도스(수출명 클레러스_Clarus) 스테이션 왜건
왜건의 수요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제조사들은 왜건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97년 대우자동차 역시 기존의 준중형 모델 누비라를 바탕으로 하는 왜건 모델을 출시했다. ‘누비라 스페건’이란 이름로 출시된 누비라 왜건은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투어링과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 월 4000대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누비라 스페건으로 인해 왜견 경쟁이 시작됐다.
1997. IMF. 멈춰버린 성장기
ⓒ크레도스 왜건 파크타운
하지만 이런 왜건 호황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모두가 잘 아는 경제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다수의 대기업이 부도를 면치 못했다. 기아자동차 역시 이런 시장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크레도스 왜건의 후속 모델로 개발 중이던 ‘크레도스 왜건 파크타운’은 출시가 연기돼 1998년 하반기에나 시장에 나올 수 있었지만 부도위기를 겪은 기아자동차의 판매량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또한 경제위기에 따른 환율 상승이 가져온 가솔린 가격의 인상 역시 자동차 시장엔 악재로 닥쳤다. 자동차 시장의 흐름이 가솔린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율성이 좋은 디젤과 LPG로 옮겨가며 SUV가 인기 차종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실용적인 차량의 인기가 높아야지 않나 싶지만 본격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전에 왜건의 성장기는 멈춰버린 셈이다. 결국 1999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모두 왜건 모델의 내수 시장 판매를 중단했다.
제 2의 시작. 그래고 현재
ⓒ라세티 왜건
왜건 모델이 다시 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낸건 2008년이다. 미국의 GM에 인수된 대우자동차(GM대우)가 라세티 왜건 모델을 출시했다. 현대자동차 역시 조심스럽게 왜건 모델을 출시했다. i30 CW가 그 주인공이다. 두 모델의 차이는 라세티는 세단이 기본 모델인 반면 i30CW는 해치백이 기본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i30CW를 왜건으로 생각하기보다 해치백의 확장형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2011년 현대자동차가i30의 상위 모델인 i40를 출시하면서 i30CW는 국내 시장에선 단종, 유럽 시장에서만 ‘i30 5도어 스테이션 왜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i40 왜건
라세티 왜건을 출시했던 GM대우는 2011년 쉐보레라는 브랜드 명으로 크루즈 5라는 해치백 모델을 출시했다. 이 모델을 기점으로 쉐보레 역시 왜건을 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2012년 크루즈 왜건을 공개했으나 국내 시장에 출시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단종이 돼 국내에 남은 왜건은 현대자동차의 i40 1개 차종만 남게 됐다.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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