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칼럼] 한국GM,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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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2. 16. 12:39
쉐보레와 캐딜락을 판매하는 한국GM이 군산공장의 철수를 결정했다.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던 크루즈와 올란도는 자연스럽게 단종의 수순에 들어갔고, 현재 남아있는 재고 물량에 대한 판매 외 생산 설비의 이전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GM 노조는 물론 군산 공장 인근의 지역 경제와 한국 정부, 업계 관계자들에겐 예고된, 그러나 충격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GM의 군산 공장 철수는 무엇이 원인일까. 어느 것 하나로 특정하기 어렵지만 대우자동차로부터 5000억원에 인수할 때 부터 잘못됐다는 의견이 가장 많다. 하지만 당시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현대자동차 그룹에겐 먹고 싶지도, 먹을만한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 미끼였을 것이다. 정부가 지원금을 무한정 쏟아 붓기엔 당시의 대우 그룹의 재정 상태가 투명치 못했고, 대우자동차가 해외 제조사에게 매각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두번째 이유로 꼽히는 것은 바로 유럽 시장에서의 철수다. 이것의 배후엔 제네럴 모터스(GM) 미국 본사의 장기적인 계획이었다는 주장이 함께 하고 있다. 유럽 시장을 철수하면서 군산 공장에서 생산하는 크루즈와 올란도의 수출 길이 막혔기 때문인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생산 물량을 한국GM에 배정하지도, 배정할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소위 ‘철수 전문가’라고 불리우던 제임스 김 前 사장과 카허 카젬 現 사장이 연임하면서 제네럴 모터스의 치밀한 ‘먹튀 계획’이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군산 공장의 철수가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한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압박 방법인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한국 GM 철수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트럼프 美 대통령의 “한국GM 군산 공장의 철수는 나의 공적”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 역시 미국 GM 본사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분석된다.
세번째 이유는 그간 국내 시장에 출시해온 모델들의 상품성이다. 한국 GM은 대우자동차에서 GM 대우를 거쳐 한국GM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원 펀치’를 날린 적이 없다. 플래그십 세단이었던 알페온은 단종을 결정한 이후에도 1년이 넘는 기간 매달 2~5대 가량이 판매될 정도로 악성 재고로 존재했다. 알페온의 자리를 대체한 임팔라 역시 현대자동차 그랜져와 기아자동차 K7, 르노삼성의 SM7 대비 뚜렷한 장점을 갖지 못했다.
크루즈와 올란도, 캡티바는 ‘안쓰럽다’는 표현까지 받아왔다.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출시한 올 뉴 크루즈지만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았고 성능 역시 평균치는 이뤄냈지만 경쟁모델을 포기하고 크루즈를 구매 할 만큼 매력적인 요소는 아니였다. 무엇보다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가격은 쉐보레의 오랜 팬들 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올란도와 캡티바는 후속 모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은 비운의 모델들이다. 캡티바의 경우엔 간간히 디자인 변화와 상품성 개선이 진행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평가는 ‘껍데기만 바꾼 차’였다.
비교적 선방한 모델은 중형 세단인 말리부와 경차인 스파크, 소형 SUV 시장을 개척 했다고 할 수 있는 트랙스 뿐이다. 하지만 트랙스 역시 르노삼성의 QM3의 등장과 함께 하락세를 겪었다. 여기에 쌍용자동차의 티볼리가 재기 불가능할 강력한 펀치를 날렸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코나와 스토닉을 출시하면서 존재감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가장 의아한 부분은 한국GM이 신차 개발을 위해 투자했다는 금액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조 86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됐다. 상용 모델인 라보와 다마스가 특별히 개선된 것도 아니다. 스파크를 제외하면 딱히 국내에서 새롭게 개발했다고 할 만한 차종도 없다. 그렇다고 한국GM 주도의 수출 전략 모델을 개발한 것도 아니다. 디자인과 일부 성능 추가 등의 수준이 전부인 셈인데 R&D로 들어간 금액은 천문학적이다.
네번째 이유는 강성한 노조다. 노조는 근로자의 편이요, 그들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집합체라고 하지만 한국 GM의 노조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노조만큼이나 강성노조로 알려졌다. 지난 4년간 수 조원에 이르는 적자폭을 기록한 한국GM이지만 노조는 언제나 성과급을 원했다. 군산 공장 철수가 발표된 이후엔 ‘군산 공장을 불모로 한 정부 지원금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지만 이전까진 ‘새로운 생산 물량 배정’을 골자로 해왔다. 노조 역시 크루즈와 올란도의 판매량이 저하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새로운 생산 물량을 확보하지 않으면 공장이 정상 가동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르노삼성자동차가 국내의 저조한 판매량에도 불구 해외 수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노사 협력을 이끌어 내 성과를 보인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이에 더해 SM6와 QM6의 개발을 주도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현재 우리나라엔 5개의 국산 브랜드가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쉐보레, 쌍용자동차 그리고 르노삼성자동차다. 비단 자동차 뿐만 아닌 모든 산업은 경쟁자가 있고, 그들이 비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을 때 경쟁하며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쌍용자동차는 SUV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시장진입이 늦은 르노삼성 자동차는 당장에 큰 경쟁력을 갖기 힘들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라는 거대 공룡사이에 그나마 큰 힘을 낼 잠재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 쉐보레였던 셈이다. 언제든 업계 1, 2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쉐보레는 그 힘을 끌어내지 못했다. 로열티 높은 충성 고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용하지 못했고 가망고객을 끌어올 만한 신차를 내놓지 못했다. GM 본사가 철수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만 내려보낼 때 ‘안된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국 GM의 한국 철수설은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산 공장 철수에 이어 서비스 네트워크도 외주로 돌렸다. 90%에 가까운 가동률을 보이고 있는 부평 공장도 R&D 센터만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경차 전용 라인을 갖추고 있는 창원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든 영업 네트워크만 남겨둔 채 모든 모델을 수입 해 판매하는 딜러사로 돌변할 수 있다. 이것이 GM 본사의 계획의 결과라면, 혹은 한국GM 경영진의 방만의 결과라면 유례 없는 치욕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최정필 에디터 gcarmedia@g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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